2010년 11월 2일 화요일

제발 나비 처럼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_에세이)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http://www.kosffl.or.kr/) 38기(2008년도) 장학생 선발시 제출 했던 에세이 입니다.




주제는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과 유사하다.
당신이 한달밖에 살 지 못하는 시한부 통보를 받았다면 그 한달동안 무엇을 할것인지 기술하시오






『 제발, 나비처럼... 』



1. 윤락 업소가기, 2. 해운대 해돋이 보러 가기, 3. 제주도 여행가기, … ….


  책상 위 책꽂이엔 프로그래밍 책들과 기타 전공 서적으로 빼곡하다. 그리고 그 책꽂이 앞엔 19인치와 20.1인치 모니터 2개, 흔해 빠진 106키보드, 한창 제작중인 프로그램의 설계도면 그리고 다양한 색과 형태의 필기구들로 널브러져 어지럽다. 그 중 20.1인치의 LCD 모니터엔 「당신이 만일 시한부 인생(한달)을 통고 받았다면 어떤 일부터 순차적으로 처리해나갈 것인지 기술하고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오」라는 문구가 떠있다.
  깨끗한 A4용지 한 장을 그렇게 어지럽던 책상 위에 바로 올려놓고 “한 달 동안 하고 싶은 일”이라는 제목에 번호를 붙여가며 하나 둘 적어가다 몇 개 써보지 못하고 욕을 하고는 그 자리를 일어나 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제가 「…어떤 일부터 처리해 나갈 것인지 기술하고…」인데 저따위 일들은 “처리해 나갈”만한 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층 자판기에서 밀크커피를 한잔 뽑아 올라와 난간에 기대어 ‘난 원두커피의 향을 즐기고 싶은데…’라는 아쉬움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쓰으읍”하면서 싸구려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 그 커피는 나의 입과 몸속 내장의 온도를 올린다.
  “윤락업소 가기… 라니…” 방금 전 쓰고 왔던 내용을 곱씹어 보곤 자판기 커피보다도 더 싸구려 같은 내 생각에 연신 쓴 웃음만 날린다.


  3주 전,
  “엄마 눈이 왜 그래요?”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와 밥을 먹고 여느 때처럼 어머니와 TV를 보며 이야기를 하는데 그날 어머니의 눈동자에 희뿌연 무언가가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가슴이 덜컥하였다. 어머니의 심기가 불편 할까봐 놀란 모습을 감추려 눈이 충혈 되었다며 병원에 가보자고 했었다. 결국 어머니께선 일로 바쁘시다며 쉬는 날에 가자고 하셨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1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군대에 가 있는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 병원에 와 있다고…


  시한부 인생이라는 끔찍한 주제를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주어준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올해 초부터 눈물로 보내야 했던 내게 어제 오늘은 두통으로 살아가게 했다. 난 지금 그런 상상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그래! 그래서 결과는 나왔니? 군의관이 뭐라고 했어?”
  “몰라. 아직은… 일주일 지난 후에 결과 나온데.”
  동생의 목소리는 아프지 않다. 여전히 건강하고 착하고 천진난만한 내 동생이다. 몇 번을 동생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아내는 이 형의 심정을 그 녀석은 알고나 있어서 저리도 밝은 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군의관은 동생에게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명을 들먹였다고 한다. 연병할 눈물은 혼자 있을 때면 어김없이 흐른다. 잠이 들려고 하면 어김없이 흐른다. 내 동생 집 떠나 먼 곳에서 불편한 것은 없을까? 집이 그리워 울진 않을까?


  커피를 다 마시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책상에 앉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모니터엔 프로그램 코드가 보이고 나의 손은 키보드 위에서 설계도면 위에서 그리고 그 많은 책들과 딱 그만큼의 자리를 차지하는 나의 책상 위에서만 바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다고 해도 내 손은 그 쪽으로 바쁘지 않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머니에겐 내 동생의 아픔을 내 동생에겐 어머니의 아픔을 감추는 것이 전부였다. 아마 내 생이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 남아 있다면 그 사실을 가족에게 감추기 바쁠 것 이다.
  「지구가 멸망해도 마지막까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든지 「마지막이니 다른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라는 멋지고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이야기들은 전부 개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내가 되었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든 그 어느 누가 되었든지. 만약… 정말 만약 한 달의 짧은 생을 통고받았다면 나비처럼 살기를 바란다. 화려함을 뽐내고 자유롭게 유유히 바람을 타며 화창한 봄날 꽃향기에 둘러싸인 채 그 어디에서도 맞보지 못하는 달콤한 꿀을 먹고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길 바란다. 제발, 제발, 제발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남들이 보기엔 한심하고 가벼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살아갈 시간이 넉넉하다고 느끼는 자들의 여유일 것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느끼며 살기엔 남은 생이 너무 가엽도록 짧구나.


  마지막으로 지금 이 세상에 한 달이 되었든 그 이하가 되었든 마지막을 기다리는 모든 분들에게 가벼이 들릴지 모르는 저의 말에 죄송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어떤 모습이든 그 분들에겐 가장 아름답고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의 마지막이 “「나에게 만일 한 달의 짧은 생만이 주어지는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그 짧은 한 달 동안 무언가 이룰 수 있을 법한 일들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일들이 타인이나 인류를 위한 것 이였으면 더욱 좋겠지요.”라고 끝나야 하는데 사람이 절박하면 이성보다 감성적이 되는 법인지라 그렇게 쓰질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할 용기나 이러한 것을 강요할 자신이 없군요.


  A4용지 2장 불량으로 작성되어진 에세이다.
  필자는 현재 38기 장학생이며... 장학 재단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비록 장학금 축내면서 살고 있지만 꼭... 갚아야... 만 할 것이다.

※ 사진 출처 : http://www.adaily.co.kr/ (우리들의 아름다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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